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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가난한 음악가 집안출신 베토벤

by 로사샘 2023.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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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생애 


가난한 음악가 집안 출신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1770 년 12월 16일 본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당시의 베토벤 일가는 음악을 생업으로 삼고 있었다. 

 

할아버지 루드비히(同名)는 앤트워프 지방에서 1733년에 본으로 이사해 와 선거 후(選擧侯, 신성로마제국의 제후 중 독일 황제의 선거권을 가진, 일곱 사람 중의 하나) 궁정악단에서 근무하다가 1767년에 악단장이 되었고, 아버지요한(Johann)은 그 악단의 테너 가수였다.

아버지 요한은 궁정 심부름꾼의 미망인 마리아 마그다레나와 결혼하여 4 형제를 두었는데 베토벤 위의 아이는 어려서 죽었으므로 3형제가 되었다.

아버지 요한은 일찍이 베토벤에게서 음악적인 재질을발견하고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쳤고, 여덟 살 때인 1778년 3월에는 쾰른에서 연주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는 모차르트가 신동으로 유럽 각지를 순회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던 것을 대단히 부러워하던 차에, 베토벤에게서도 그 꿈을 실현시키고자 무리하게 피아노를 가르친 것이었는데 그러나 베토벤은 모차르트와 같은 신동은 아니었다.

베토벤은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가 열한 살까지밖에 다니지 못하였고, 성적도 좋은 편이 못 되었다. 따라서 기초교육이 부실하여 그가 써 놓은 글들은 군데군데 맞춤법이 틀려 있고, 적어 놓은 가계부의 셈도 여기저기 틀려 있음을 볼 수 있다.

베토벤이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은 그의 아버지가 술주정뱅이로 금치산 선고를 받아야 할 만큼 무능력해 가정이 빈곤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음악가로서 대성하려는 의지로 열심히 독학을 한 끝에 다방면에서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을 갖추었고,
특히 문학과 철학 · 역사를 매우 좋아하여 괴테, 실러 등과 어울려 담론 하기를 즐겨했다.

베토벤은 궁정 오르가니스트인 판 텐 매텐과 궁정 악장인 리스 등에게 음악을 배우다가 1779 년부터는 크리스티안 고트리프 네페 (1748~1798)에게서 작곡법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네페는 하모니와 게네랄바스의 주법,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 등을 중점적으로 가르쳐 주었다.

빈으로 가다

베토벤의 학구적인 열의는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하였다. 보다 차원 높은 음악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1787년 멀리 빈으로 모차르트를 찾아갔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베토벤에게 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은 채 즉흥연주에만 약간의 칭찬을 해주었기 때문에, 실망한 나머지 방황을 하다가 어머니의 사망으로 그해 7월 귀향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 동안은 가정을 돌보며 평범한 생활을 하였다.

그런 베토벤에게 1792 년 우연하게도 행운이 찾아왔다.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이 런던에 여행을 갔다가 빈으로 돌아가던 길에 본에 잠시 들렀을 때 피아노를 쳐 보이자 매우 칭찬을 해주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본 궁정에서 장학금을 받아 다시 빈으로 가 하이든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이 일을 추진해 준 사람은 발트시타인 백작이었다.

그런데 하이든의 제자가 되긴 하였지만 베토벤이 정작 바랐던 것은 이미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와 같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빈으로 떠날 때 발트시타인 백작이 작별인사로 써 준 사인북에 잘 나타나 있다.

"친애하는 베토벤 군, 일찍이 꿈꾸었던 바가 이루어져 바야흐로 떠나려 한다. 모차르트의 수호신은 그 곱게 기른 옥동자를 잃고 지금도 슬피 울고 있다. 

 

음악에 뛰어난 하이든에게 의뢰하여, 누군가를 발견하려 하고 있다. 군이

여, 방심하지 말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하이든의 손에서 모차르트의 영혼을 받으라."

빈에서 하이든으로부터의 수업은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자녀가 없었던 하이든이었으므로 뛰어난 제자에게 남다른 호의 와 애정을 베풀기는 하였으나, 교수 방법에 있어서 왕성한 베토벤의 지식욕을 해갈시켜 주지는 못하였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베토벤은 스승 몰래 다른 선생을 찾아다니며 배우기도 하고 조언을 받기도 하였다. 센크(Johann Schenk 1753~1836)에게서 대위법을 알브레히츠베르거(Johann Georg Albrechtsberger 1736∼1809)로부터 푸가 등 많은 작법을 살리에리(AntonioSalieri 1750∼1825)에게서 이탈리아 가곡작법을, 엠마누엘 알로이스 푀르스터 (Emanuel Alois Forster 1748~1823)에게서 현악 4 중주곡을 배웠다. 

 

그리고 하이든이 1794년 1월, 제2차 영국여행을 떠나는 것을 계기로그나마 1년여 지속되어 오던 교관계는 끊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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