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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모차르트의 생애

by 로사샘 2023.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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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초상화



 

 

신동이던 어린 시절

음악가 중에는 천재가 많다. 슈베르트도 천재요, 쇼팽도천재였다. 그러나 그중에도 가장 천재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음악가는 역시 모차르트다. 

 

35년이란 짧은 삶에서626 곡 작품 번호 숫자)이란 많은 작품을 남겼고, 또 그 작품들이 대부분 뛰어난 걸작이거나 모범작 들이고 보면 모차르트가 천재 중의 천재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Mozart), 그의 이름인 아마데우스는 라틴어로 '하느님의사랑'이란 뜻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다시 독일어로 번역하면 고트로프(Gottlob) 여서 모차르트는 고트로프라는 애칭도 함께 가졌었다.

모차르트가 천재로 태어난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었겠지만 하느님은 그에게 고르게 사랑을 베풀지는 않은 듯 빈곤이란 부담도 함께 주어 그는 많은 날들을 빈곤의 고통 속에서 살다 갔다. 

 

모차르트는 1756년 1월 27일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모차르트에게 있어 아버지 요한 게오르그 레오폴트 모차르트(Johann Georg Leopold Mozart 1719∼1787)와 고향 잘츠부르크는 하느님 다음 가는 존재였다. 

 

그에게서 천재성을 발견하여 재능을 갈고닦고 키워준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고 또 음악활동을 충분히 하도록 뒷바침해 준 사람도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아버지인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궁정악단의바이올린 주자였다. 그는 1757년에 이 악단의 부악장이 되었지만 이러한 세속적인 영예는 아들을 뒷바라지하느라 지극히 작은 것에 자족하였을 뿐이고 그의 능력과 인품은 보다 유능하고 고매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작곡을 하여교향곡 · 협주곡 · 실내악곡 등에 많은 작품을 남겼고 그의 저술 <바이올린 주법은 독일 · 프랑스·이탈리아 등에서 지금도 교육자료로 쓰일 만큼 명저이다.

모차르트는 이러한 아버지와 마을에서 가장 미인이었던어머니 안나 마리아(Anna Maria 1720~1778) 사이에서 3남 4녀 중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러나 위로 5남매는어려서 죽고 다섯 살 위인 넷째 누나 마리아 안나 발브르가(통칭 난네를 Nannerl)와 함께 자랐다. 

 

난네를 역시 음악에 재능이 있어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배운 솜씨로 모차르트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피아노를 쳐 뭇사람들을 감탄케 하였으나 이탈리아 여행 후부터는 활동을 중지하고 가정을 지켰다.

모차르트가 신동이었다는 사실은 난네르가 써 놓은 일기(1759년)에서부터 발견된다. 

 

그것은 아버지가 난네르에게 피아노(실은 쳄발로)를 가르치고 있을 때 세 살바기모차르트가 주의 깊게 보고 있다가 후에 혼자서 3 도의 화음을 알아맞혀 쳤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천재성을 간파하고 그 다음해부터 피아노를 가르치게 되었고, 모차르트는 또 그다음 해인 다섯 살에 이미 작곡을 시도(안단테 C장조 K. V Ia 등 4곡)하게 되었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잘츠부르크는 경치가 무척 아름다운곳이다. 

 

알프스 산맥이 엮어 내려오다 멈춘 곳에 강물이흐르고, 다시 평야가 펼쳐진 곳에 호수가 자리 잡은 경승지이다. 잘츠부르크라는 도시 이름은 '소금성'이란 뜻이다.

 

 

모차르트가 살던 집

주위에 소금산이 많아 붙여진 이름인데, 도시를 가로지르는 '잘츠아크'라는 강 이름 또한 소금물이 흘러 '소금의 시냇물'이란 뜻으로 지어졌다. 

 

그래서 잘츠아크는 바다와떨어진 내륙에 위치했지만 갈매기가 무수히 나는 기현상을 자아내기도 한다. 

 

1920년부터 매년 여름이면 이곳에서 세계 최대의 음악제가 열리고 있는 것은 모차르트가 태어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한 데다 자연이 매우 아름다운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자연이 아름다운 곳에서 자란작곡가는 아름다운 마음씨에 아름다운 영감을 얻어 아름다운 음악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모차르트 음악에서맑고 단정한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것은 잘츠부르크의 아름다운 산수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모차르트는 아름답고 큰 눈을 가졌다. 회청색의 맑은 눈이 얼굴에 비하여 너무 컸다. 눈이 크면 겁이 많다던가,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매몰찬 곳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저 순진무구할 뿐, 처세에 약삭빠르지 못하고 이재(理)에도 어두웠다. 더구나 정규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고친구조차 사귈 기회가 없었던 그에게 아버지는 음악을 가르치고 연주여행을 주선하고 애정문제까지 관여하는 등 모든 문제를 돌보아 줌으로써 아버지 없는 세계에서는 홀로 서기가 힘에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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