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생애 2
모차르트는 직장에서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 주어지고 대우가 만족스럽지 못한 데서 오는 불편함을 이기지 못해 더 이상의 근무를 거부하고 프리랜스 음악가의 길을 걸은 것이 불행을 자초하였지만, 베토벤은 처음부터 누구로부터도 간섭받지 않은 자유 예술인의 길을 걸으면서도 성공한 것이다.
그것은 직업 그 자체에서 차이가 생긴 것이 아니라 일의 적성과 추진 역량, 그리고 시대 상황의 차이였을 것이다.
사교적인 것은 오히려 모차르트였다. 부드러운 인상, 상냥하고 유모스런 말씨, 화려한 옷차림, 그리고 항상 사교장에 나가기를 좋아하는 스타일이 모차르트였다.
이에 비해 베토벤은 무뚝뚝하고, 엉망인 에티켓하며,격하기 잘하는 성미에다 또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는 성격이 모차르트와 정반대였다.
그러나 베토벤에게는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어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고 자신이 필요한 것을 받아내는 이른바 기브 앤 테이크의 정신이 투철하였다.
그래서 귀족들 앞에서 일쑤 화를 냈지만 오히려 상대방이 너그럽게 봐주었다고 한다.
베토벤의 귀족들로부터의 도움은 1812년에 끝이 났다.귀족들이 프랑스혁명으로 모두 몰락하여 경제적 능력이 없어졌기 때문인데, 여기에 갈음하여 음악계를 돕겠다고 나타난 것이 악우협회이다.
1812년에 창립한 빈의 악우협회는 음악회를 주최하고,음악원을 설립하고(1817년에 설립한 이 음악원이 오늘날의 빈음악원이다) 음악도서관을 운영하고, 음악잡지를 발간하고 악보를 대출하던 당시 빈의 음악문화를 주도한 단체이다.
당시는 중산층의 경제적 능력이 성장하면서 귀족사회에서 부르주아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이어서 한편에서는 부르주아들이 바탕이 된 대중적인 고전음악이 성행하기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귀족 퇴물림들이 많이 참여한 악우협회에서 고전음악 활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베토벤에게도 악우협회의 혜택은 컸다. 교향곡을 자주연주해 주었고 출판도 해주었으며 경제적인 도움도 주었다.
베토벤은 피아노나 작곡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서 수입을가져오는 일은 별로 많지 않았다.
남성 제자로는 빈에서 초년시대에 가르친 페르디난트 리스(Ferdinand Ries1784~1838)와 칼 체니 (Carl Czerny 1791~1857)가 있을 뿐이다. 체르니는 피아노 교칙본을 만들어 후진에게 공헌한 훌륭한 제자였다.
그 외에 1814년 이후부터 측근에서 무보수 비서 역할을 했던 안톤 신들러 (Anton Schindler 1798~1864)가있는데, 그는 직접적인 제자는 아니었고 사후인 1840년 베토벤 전기를 써서 베토벤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 사람이다.
그리고 베토벤은 여러 명의 여성 제자를 두었으나 가르치는 데는 무성의한 채 단지 그녀들을 사랑하고 사모하는데만 열중했다.
의지의 생활
베토벤은 술을 좋아했다. 술을 좋아하는 것은 그의 집안 내력이다.
할아버지가 본의 궁정 악장이면서 부업으로술 장사를 한 것이 원인이 되어 할머니가 알코올 중독으로 폐인이 되었고 아버지도 알코올 중독으로 금치산 선고를 받아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베토벤은 작곡에 지장을 주거나 허약한 위장을더 악화시킬 만큼 술을 마시지는 않았다. 더러는 만취할
때도 있었으나 매우 드문 일이었고, 분위기에 따라 두세잔의 포도주를 마시는 정도였다.
베토벤은 또 담배도 피웠다. 그러나 끽연가는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집합된 장소에서나 거리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일은 없었고 다만 음식점 같은 곳에서만 한 대씩 피웠다.
담배의 종류는 당시 권련이 유행되기 시작하였지만 언제나 파이프에 가루담배를 집어넣고 엄지손가락으로 꼭꼭 눌러가면서 피웠다.
그리고 베토벤은 춤도 배우러 다녔다. 빈에 와서 주요인물들과 사귀다 보니 여흥 장소에서 그들과 어울려 춤을 추어야 할 경우가 자주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마스터하기도 전에 춤 배우기를 그만두고 말았다. 아마도 베토벤 자신은 멋들어지게 춤을 출 소질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믿었거나, 아무리 자유주의 사상이 물결치고 있는 시대라 하더라도 부녀자들, 특히 유부녀를 끌어안고 춤을 춘다는 것은 도덕적인 면에서 문제가 있고 점잖지 못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베토벤은 춤을 추어야 할 때면 춤 대신 피아노 즉흥곡을 신나게 연주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서비스했다.
베토벤은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다. 뿐만 아니라 쓸데없이 찾아오는 방문객들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혹자는 베토벤이 외모에 자신이 없고 귀머거리 신체장애자라서 부끄러워 그랬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베토벤은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미화해서 그려놓은 초상화와는 달리 외모가 별로 신통치 못했다.
툭 튀어나온 이마, 낮은 코, 붉은 얼굴, 불룩한 배, 뒤로 빠진엉덩이, 빗질 안 한 헝클어진 머리, 작은 키, 허름한 옷차림 등이 꼭 시골의 못생긴 머슴과 같았다.
하지만 베토벤이 이런 것에 대한 컴플렉스로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렸을 것이라는 말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베토벤은 자신이 작곡한 곡을 초연할 때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직접 지휘봉을 들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으며, 젊은 시절에는 피아노 연주회도 자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베토벤이 사람을 피한 듯한 인상을 준 것은 그가 천성적으로 외향성을 지닌 성격이 아닌 데다가 시간을 아끼기 위해 불필요한 사람을 만나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베토벤을 가까이서 대면한 슈베르트나 리스트같은 사람들은 그로부터 범키 어려운 위엄과 근엄성을 느낀 것으로 전해진다. 신중한 언행과 사람이나 사물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눈, 굳게 다문 입에서 그런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베토벤이 못생겼다는 것은 피상적인 관찰이고 종합적으로 볼 때는 의지가 강하고 집중력이 강한, 그러나 외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인, 남성적인 풍모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어떻든 베토벤은 필요없는 일을 하지 아니하고, 필요 없는 시간을 보내지 아니하고, 필요 없는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고, 필요 없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고, 신체장애의 고통을 영웅적으로 극복하면서 모든 에너지를 한데 모아 작곡을 하는 데 힘을 썼다.
그래서 당시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 군대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 예술로써 세계를 제패하고 인류를 제패하여 그 강고한 예술 제국을 영원불멸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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