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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쇼팽의 예술

by 로사샘 2023.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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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으 기념비

 

 

쇼팽의 예술

작곡 태도

쇼팽이 원하는 곡은 무엇이었던가. 그건 손톱을 칠한 아름다운 여인들이 마주르카나 녹턴을 연주하면서 "흥! 이건 저절로 흘러나오는군. 이런 건 나라도 작곡할 수 있겠네."라고 중얼거리는 곡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곡을 작곡하느라 그의 영혼은 가장 비참하고 가장 처절한 투쟁을 해야 했다.

항상 곁에서 일상적인 것을 지켜보았던 상드는 다음과 같은 글로 그의 작곡 태도를 묘사하고 있다.

"그의 창조는 무의식적이고 기적적인 것이다. 그는 전혀 찾아보지도 않고 예견 치도 않은 것에서 악상을 얻는다. 그것들은 그의 피아노 위로 갑자기 날아오기도 하고 혹은 그가 산책하고 있는 동안 그의 머릿속을 스쳐가기도 한다. 

 

그러면 그는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하여 서둘러 달려가서 피아노로 그려본다. 그러나 그 다음에 가선 일찍이 내가 경험하지 못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긴 고뇌가 시작된다. 

 

온종일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울다가, 걷다가, 펜을 부러뜨리기도 하고, 한 소절을 1백 번도 더 되풀이 고치고, 쓰고 지우고 또 쓰고, 다음날 절망적인 그 일이 다시 되풀이되고, 그는 한 페이지를 채우는 데 6주일을 보냈건만 그러나 결국 그 맨 처음 시도했던 초안으로 다시 돌아와 그걸 다시 쓰게 될 뿐이었다."

 

 

연주 스타일

쇼팽의 피아노 연주에 대해 파리의 라 프랑스 뮤지컬 지는 1841년 5월 2일 자로 "쇼팽은 더할 나위 없는 감정의 피아니스트이다. 그는 달콤함과 부드러움과 멜랑콜리를 가지고 꿈꾸듯 흐느끼며 노래 부른다. 

 

그는 가장 숭고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라고 했고 리스트는, “부귀와 재능, 그리고 아름다움을 갖춘 상류층 관객들이 쇼팽을 애수적이고 심원하며 순수하고 몽상적인 시인으로 만들었다."라고 했으며, 영국의 맨체스터 가디언지는 1848년 8월 28일 1천2백 명을 수용한 홀에서의 피아노 연주에 대하여 "그의 음악은 활력보다 우아함, 직접적인 전달이라기보다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정교함, 그리고 건반을 견고하고 힘차게 지배하는 대신 빠르고 우미한 터치로 구사한다. 

 

그의 음악작품도 연주 스타일과 마찬가지로 실내악의 미학에 적합하지만, 거대한 홀에서의 연주는 장대 함이라든가 구도의 견고함 같은 기악적인 힘이 결여되어 있다."라고 했다.

이러한 연주평에서 보듯이 쇼팽 음악은 우아하고 감미롭게 꿈꾸듯이 흐르는데, 그러자니 그 소리는 자연히 울림이 약해 음향 시설이 미비했던 당시로서는 불만족함도 없지 않았다. 

 

따라서 쇼팽의 작곡과 연주는 2, 3백 명단위 이하의 관중을 수용하던 살롱이 적합한 장소였다.

그때는 귀족이나 부호들이 살롱을 소유하고 그들끼리 즐기기 위하여 오락적인 음악을 공연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쇼팽의 마주르카 • 녹턴 · 왈츠 등 음악이 종래의 오락적인 살롱음악에서 고도의 예술음악으로 대체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쇼팽은 우아하고, 세련되고, 섬세하고, 감미롭고, 로맨틱하고, 센티멘틀한 그의 작품으로 살롱 손님들을 매료시켜 절대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쇼팽은 항상 자신의 작품만을 연주했고, 그의 작품은 대부분 살롱음악에 적합하였으므로 그 또한 살롱에서 연주하는 일이 많았었다.

 


작품의 특징

쇼팽은 아버지가 프랑스인이고 어머니가 폴란드인이며, 그의 생애를 앞의 20년은 폴란드에서, 뒤의 20 년은 프랑스에서 살았다. 따라서 음악의 형태도 이들 두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폴란드에서 폴란드 토착의 폴로네즈 · 마주르카를 차용(借用)했고, 리듬 • 화성 음계 또한 폴란드적인 반면 악곡을 감싸고 있는 현란한 장식이나 끝맺음의 정치함, 그리고 음악 전체로서의 선명함, 또한 귀족취미 등은 프랑스 파리에서의 살롱음악을 반영한 것이다.

쇼팽은 평생 존경하던 바하니 모차르트와 같이 음악은 음악 그 자체에서 미를 추구해 나고 믿었다. 음악은실생활로부터 해탈된 추상적 이상세계에 속하는 것이어야 하고, 어떤 것도 게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문학과 제휴한 슈만의 반대 입장에 섰다. 이 점에서 슈만이나 리스트와 같은 다른 낭만파 작곡인들과 다르다.

쇼팽 작품에서 쇼팽적이랄 수 있는 것이 풍기는가에 대하여 니힐리즘(허무주의) 혹은 센티멘틀이라고도 한다. 쇼팽은 나라를 잃고 망명생활을 하면서 세 번씩이나 실연을 당한 나머지 그의 작품에 그런 것이 자신도 모르게 스며들었는지 모른다.

 

베토벤 음악과의 차이

베토벤과 쇼팽은 피아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이다. 피아니스트들은 이 두 작곡가의 작품을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서 능력이 평가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베토벤은 고전주의 음악을 최종 확립한 거장이고, 쇼팽은 낭만주의 음악의 표상이므로 그들의 음악을 대하는 방법은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

베토벤의 곡에서는 대부분 형식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소나타 형식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져 형식 없는 베토벤곡을 상상할 수 없지만, 쇼팽은 형식을 그렇게 중요시하지는 않았다.

베토벤을 포함한 고전파들은 소나타 형식을 토대로 음악의 논리적 전개와 균형성, 완결성을 추구했는 데 비하여 낭만파는 형식미보다는 자신들의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였다.

낭만파들은 어느 누구도 모차르트의 절묘한 균형미나베토벤의 튼튼한 구성력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러나 낭만파는 고전파가 갖지 못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 고전파의 모차르트가 생활의 빈궁 속에서도 청명한 음악을 썼지만 그가 낭만파였더라면 그러한 빈궁 상태에서는 비통한 고뇌의 노래를 썼을 것이다.

 

그래서 고전파 음악이 이성적 · 객관적 • 논리적이라면 쇼팽과 같은 낭만파 음악은 감성적 · 주관적 · 비논리적 음악이다.

 

베토벤의 소나타 형식은 주조와 속의 관계에 있는 대립적 주제의 제시부(部), 그 주제를 자유롭게 다루는 전개부, 그리고 재현으로 되어 있는, 구성이 극히 역학적이다.

전개부의 긴장과 그 발전적 해소로서의 재현부, 이러한 배열은 베토벤 음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음악은 본질적으로 드라마이며 드라마의 본질은 대립과 갈등이다. 베토벤 음악에 내재하는 드라마틱한 감성은 소나타 형식이 갖는 역학과 일치하는 것이다.

쇼팽은 이러한 형식을 중요시하지 않았으며 그의 음악은 복수의 단면으로 되어 있다. 그 단면은 베토벤의 경우처럼 서로 대립 · 긴장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수평 관계에 있는 독립된 것이다.

베토벤이 한치의 틈도 없는 완전한 설계도를 그린 다음 건축하듯 작곡했는 데 비하여, 쇼팽은 자신의 내부에서 솟아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작곡을 하였다. 

 

그래서 베토벤은 모든 것이 면밀하게 계산되어 있어 어느 부분이든 그 이전의 부분에서 귀납된 것이므로 베토벤을 연주할 때는 반드시 생각해야 하고 생각을 해보면 깨닫게 되어 있다.

그러나 쇼팽에 있어서는 음악 그 자체가 변증법적으로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설계도, 해독 같은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단 여기에서 말하는 베토벤의 음악은 중기 이전의 것을 말하며 후기의 소나타인 op.109.110·111은 예외이다. 이들 소나타는 형식이 자유로워지고 환상적이라서 낭만주의에로 한발 다가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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