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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예술 쇼팽의 예술 작곡 태도 쇼팽이 원하는 곡은 무엇이었던가. 그건 손톱을 칠한 아름다운 여인들이 마주르카나 녹턴을 연주하면서 "흥! 이건 저절로 흘러나오는군. 이런 건 나라도 작곡할 수 있겠네."라고 중얼거리는 곡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곡을 작곡하느라 그의 영혼은 가장 비참하고 가장 처절한 투쟁을 해야 했다. 항상 곁에서 일상적인 것을 지켜보았던 상드는 다음과 같은 글로 그의 작곡 태도를 묘사하고 있다. "그의 창조는 무의식적이고 기적적인 것이다. 그는 전혀 찾아보지도 않고 예견 치도 않은 것에서 악상을 얻는다. 그것들은 그의 피아노 위로 갑자기 날아오기도 하고 혹은 그가 산책하고 있는 동안 그의 머릿속을 스쳐가기도 한다. 그러면 그는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하여 서둘러 달려가서 피아노로 그려본다. 그러나 .. 2023. 4. 27.
쇼팽의 노앙의 추억 노앙의 추억 노앙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꽃으로 구름을 이룬 동산 앞에 싱그러운 전원이 펼쳐져 있고 늙은 고목나무 그늘아래 커다란 별장이 있는데, 별장에는 산책할 때나 나들이할 때 필요한 쌍두마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별장 내부는 넓은 홀과 작은 인형극장과 호화로운 가구들이 갖춰져 있어 불편함이 전혀 없다. 쇼팽은 이곳에서 한여름 동안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요양과 더불어 작곡을 하다가, 건강상 해로운 찬바람이 불어오는 늦가을인 11월쯤 되면 파리로 들어가 겨울을 나는 생활을 계속했다. 1년, 2년, 3년, 그리고 그다음 해에도. 쇼팽은 상드와 함께 생활하면서 상드에게 "상드 여사""주인마님"이라고 불렀고, 상드는 쇼팽을 부드럽고 다정스럽게 '숍(Chop), 쉽(Chip), 쉬페트(Chipette), 쇼핀스키.. 2023. 4. 27.
쇼팽의 연인, 상드와의 사랑 상드와의 사랑 리스트가 몇몇 친구들을 초대하여 호텔 드 프랑에서 만찬을 들었다. 그리고 기분 좋게 돌아가던 길이었다. 쇼팽이 함께 걷던 힐러에게 “상드라는 그분 진짜 여자예요? 나는 아무래도 의심이 가요."라고 했고, 상드는 또 함께 걷던 마를 리 아니 부인에게 “쇼팽 씨는 혹시 남장을 한 소녀가 아니에요? 아무래도 남성 같지가 않던데."라고 했다. 쇼팽과 상드는 1836 년 겨울에 처음 만났는데, 서로의 첫인상이 이러했던 것이다. 문학과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쇼팽과 상드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알만큼 유명한 이들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조르즈 상드(Georges Sand)의 본명은 오로르 뒤팽 F(Aurore Dupin)으로, 당시 나이가 쇼핑보다 여섯 살 위인 32세였다. 본래 .. 2023. 4. 26.
쇼팽 조국을 떠나다 조국을 떠나다 쇼팽은 1830년 11월 23일, 절친한 친구 티투스와 함께 프라그를 거쳐 빈에 도착하였다. 이번에도 전처럼 환대해 줄 것이란 기대와 함께. 그러나 전과는 딴판이었다. 그 사이에 바르샤바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나 여명 정부가 세워지고 러시아가 이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정치상 우호관계에 있던 오스트리아는 자연폴란드와 폴란드인들에게 적대감정을 갖게 된 것이었다. 티투스는 쇼팽을 혼자 남겨두고 조국을 구하러 귀국했다. 쇼팽은 어쩔 수 없이 빈을 떠나기로 하고 런던행 비자를 얻어 1831년 7월 20일에 빈을 떠났다. 그는 가늠도 중인 9월 8일에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하여 바르샤바가함락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가슴을 찌르는 아픔을 느꼈다. 이 역사적인 참사는 독립하려는 폴란드의 민.. 2023.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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