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처럼 음악의 신동인 쇼팽!!
쇼팽의 아버지 니꼴라스는 프랑스에서 폴란드로 이민을 가서 젤라조바볼라에 정착하였다.
그는 그곳의 폴란드 여성과 결혼해서 1남 3녀 중 쇼팽을 낳았다.
아버지 니꼴라스는 바르샤바의 리세움 기숙학교에 프랑스어 교사로 취직이 되면
서 쇼팽 가족은 바르샤바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때 쇼팽은 생후 7개월 때였다.
쇼팽의 아버지는 교양 있고 점잖으며 자녀교육에 최선을 다하는 좋은 아버지였고, 어머니도 자상하고 섬세한 성향의 심덕이
여서 쇼팽은 편안하고 안정적인 가정환경 속에서 자랄 수 있었다.
쇼팽에겐 누나와 두 명의 여동생이 있어서 인지 여성스럽고 연약해 보이는 데다가 내성적이고 소심해 보였다.
특히 누나 루드비카는 쇼팽과 기질과 감성이 무척 닮아서 서로 각별했고, 쇼팽은 평생 동안 어머니 대신
누나에게 의지하였다.
어린 시절 쇼팽은 감성이 남달라서인지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자주 울음을 터뜨렸다.
쇼팽은 6세 전에는 어머니와 누나에게 피아노를 배웠지만, 그 이후는 누나와 함께 지브니 선생에게서 6년간 레슨을 받기
시작하였다.
지브니 선생님은 쇼팽에게 바흐와 모차르트의 음악을 강조해서 가르친 덕분에 쇼팽은 평생 동안 바흐와 모차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쇼팽은 이미 7세에 즉흥연주를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에 쇼팽이 신동이라는 소문은 금방 귀족사회에 퍼져나갔으며 귀족들의 저택에 초청을 받아 연주하는 일이 많아졌다.
쇼팽은 이렇듯 어려서부터 귀족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귀족의 매너와 우아한 몸가짐을 익히게 된다.
또 교사인 아버지는 집으로 지식인들을 초대해 쇼팽이 연주하게 하는 등 쇼팽의 교육에 신경을 많이 썼다.
쇼팽은 타고난 재능과 이런 외부적 요인들로 인해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심성도 남달라 생각이 성숙했고 특히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아이였다.
쇼팽의 성장기에 부모님의 역할은 참으로 대단했다.
쇼팽의 아버지는 쇼팽이 귀족의 살롱에서 연주하며 인기가 높아지자, 아들이 순수성을 잃을까 봐 걱정이 되어 지나치게 많은 공연에 다니지 않도록 한다.
또 아버지는 쇼팽이 음악에만 치우치는 것을 염려해 일반 중고등학교에서 다양한 교과과정을 배우게 하였다.
이 시기에 쇼팽의 집에서 함께 지내던 기숙생 티투스, 보진스카 형제들, 그리고 폰타나는 평생 동안 쇼팽의 좋은 친구가 된다.
특히 티투스는 쇼팽이 평생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은 쇼팽의 베스트 프렌드였고,
폰타나 역시 쇼팽의 비서 역할을 자처하며 악보를 산보하고, 출판사와의 교섭을 담당하며 쇼팽의 유작들(Op.66~Op.74)을 출판하기도 했다.
쇼팽은 유머감각과 재치, 문학적 재능도 엿보였다.
어려서부터 풍자적으로 웃기기를 좋아했던 쇼팽은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의 말투와 표정을 그대로 흉내 내며 친구들을 즐겁게 하곤 했다.
몸이 약한 자신을 걱정하는 부모님을 안심시키는 위해 유쾌한 편지를 매일 써서 보내는 효심 가득한 아들이기도 하였다.
쇼팽의 부모님은 쇼팽이 본격적인 음악 교육을 위해 바르샤바 음악원에 입학하고, 작곡가 엘스너 선생님에게 음악이론과 작곡 수업을 받았으며, 좀 더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할 수 있게 친구들과 음악의 도시인 빈 으로 여행을 보내기도 한다.
쇼팽이 빈의 데뷔 콘서트에서 연주하여 성공적인 연주곡!
Variations on "Là ci darem la mano", Op. 2
Op. 2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 나오는 2중창곡인 ‘우리 손을 맞잡고’를 바탕으로 작곡된 변주곡.
임윤찬 피아노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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