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을 떠나다
쇼팽은 1830년 11월 23일, 절친한 친구 티투스와 함께 프라그를 거쳐 빈에 도착하였다.
이번에도 전처럼 환대해 줄 것이란 기대와 함께. 그러나 전과는 딴판이었다. 그 사이에 바르샤바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나 여명 정부가 세워지고 러시아가 이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정치상 우호관계에 있던 오스트리아는 자연폴란드와 폴란드인들에게 적대감정을 갖게 된 것이었다.
티투스는 쇼팽을 혼자 남겨두고 조국을 구하러 귀국했다. 쇼팽은 어쩔 수 없이 빈을 떠나기로 하고 런던행 비자를 얻어 1831년 7월 20일에 빈을 떠났다. 그는 가늠도 중인 9월 8일에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하여 바르샤바가함락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가슴을 찌르는 아픔을 느꼈다.
이 역사적인 참사는 독립하려는 폴란드의 민의를 짓밟고 1백만 명의 희생자와 1만 명 이상의 망명객을 냈다.그는 이곳에서 <혁명>이라고 부르는 작품 10 의 제12번을 작곡했다고 한다.
쇼팽은 1831년 9월 파리에 도착했다. 파리는 빈보다 폴란드인에게 호의를 가지고 대하였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프랑스가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반대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리는 사람들의 습성이나 생활 풍속, 그리고거리 환경이 상상 외였다.
3천2백60만의 총인구에 1백만 이상의 파리시민을 가졌던 당시의 프랑스는 정치·사회적으로 격변을 겪으면서 대혼 잡을 빚었으나, 혁명의 여덕으로 자유가 물결치고 문화예술을 꽃피워 이제 파리는 빈을 능가하는 예술의 도시가 되어 있었다.
쇼팽은 런던으로 갈 것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고향인 프랑스에서 활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작곡가 케루비니와 로시니, 피아니스트 칼크브레너를 만나 보고 멘델스존, 리스트, 힐러를 친구로 사귀게 되었다.
쇼팽은 대가 칼크브레너에게 큰 감명을 받은 나머지 그로부터 피아노를 배우려고 하였으나, 친구들인 맨델스존이나 리스트 등이 칼크브레너의 무미건조한 전통주법이 쇼팽의 독창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면서 반대하여 그만두고, 이들 여러 사람의 도움을 얻어 1832년 2월 26일 파리 데뷔 연주회를 열었다.
이 연주회는 얼마쯤의 성공을 가져왔다.
파리는 당시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정치·사회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자유스러운 도시였다. 그래서 유럽의 지식인이나 문화·예술인들의 집합 장소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낭만주의 운동이 학과 회화에서부터 확산되어음악에까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따라서 쇼팽 또한 이 조류에 자연히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파리의 데뷔 연주는 그에게 좋은 결실을 가져다 주었다. 귀족들이 그의 연주에 매혹되어 많은 자녀들을 보내 레슨을 받게 한 것이다. 그의 세련되고 우아하고 화려함에 끌린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제 생활에 여유를 갖고 작곡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쇼팽은 첫사랑인 콘스탄티아가 결혼했다는 소식을1831년에 들었고, 제2의 연애는 1835 년에 있었다.
그 해 양친이 병 요양차 독일의 온천지 카를스바트에 온 것을 계기로 8월에 그곳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드레스덴에들러 옛 친지인 보겐스카 백작집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어릴 때 친구였던 마리아 보겐스카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3주 동안 그곳에 머물다가 그녀와 헤어짐에 즈음하여왈츠 한곡을 작곡하여 주었는데 그것이 <이별의 왈츠> A장조 op.69의 1이다.
다음 해에 그녀를 찾아가 부모에게 결혼 승낙을 요청했으나 반대에 부딪혀 치명적인 마음의 상처를 입고 말았다.
쇼팽은 이때 그녀로부터!! 온 편지 모두와 장미꽃 한 다발을 묶어 거기다가 '나의 픔'이라고 썼고, 그것이 그가 죽은 후 유품 속에서 발견되었다.
이때 드레스덴을 방문하고 돌아오는길에10월말 라이프치에 들러 멘델스존과 비크네 집을 방문했다.
그럼으로써 거기서 결혼 전의 클라리와 슈만도 만났다. 또 다음 해 10월에도 그곳을 들려 그들과 만나 우정을 나누며 그의 음악에 대한 이해를 굳혔다.
쇼팽은 또 1833년에 리스트에 대한 우정의 표시로 12연습곡을 그에게 헌정했으며, 1834년 12월엔 베를리오즈의 지휘로 리스트와 함께 연주회를 가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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