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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117

쇼팽의 노앙의 추억 노앙의 추억 노앙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꽃으로 구름을 이룬 동산 앞에 싱그러운 전원이 펼쳐져 있고 늙은 고목나무 그늘아래 커다란 별장이 있는데, 별장에는 산책할 때나 나들이할 때 필요한 쌍두마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별장 내부는 넓은 홀과 작은 인형극장과 호화로운 가구들이 갖춰져 있어 불편함이 전혀 없다. 쇼팽은 이곳에서 한여름 동안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요양과 더불어 작곡을 하다가, 건강상 해로운 찬바람이 불어오는 늦가을인 11월쯤 되면 파리로 들어가 겨울을 나는 생활을 계속했다. 1년, 2년, 3년, 그리고 그다음 해에도. 쇼팽은 상드와 함께 생활하면서 상드에게 "상드 여사""주인마님"이라고 불렀고, 상드는 쇼팽을 부드럽고 다정스럽게 '숍(Chop), 쉽(Chip), 쉬페트(Chipette), 쇼핀스키.. 2023. 4. 27.
쇼팽의 연인, 상드와의 사랑 상드와의 사랑 리스트가 몇몇 친구들을 초대하여 호텔 드 프랑에서 만찬을 들었다. 그리고 기분 좋게 돌아가던 길이었다. 쇼팽이 함께 걷던 힐러에게 “상드라는 그분 진짜 여자예요? 나는 아무래도 의심이 가요."라고 했고, 상드는 또 함께 걷던 마를 리 아니 부인에게 “쇼팽 씨는 혹시 남장을 한 소녀가 아니에요? 아무래도 남성 같지가 않던데."라고 했다. 쇼팽과 상드는 1836 년 겨울에 처음 만났는데, 서로의 첫인상이 이러했던 것이다. 문학과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쇼팽과 상드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알만큼 유명한 이들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조르즈 상드(Georges Sand)의 본명은 오로르 뒤팽 F(Aurore Dupin)으로, 당시 나이가 쇼핑보다 여섯 살 위인 32세였다. 본래 .. 2023. 4. 26.
쇼팽 조국을 떠나다 조국을 떠나다 쇼팽은 1830년 11월 23일, 절친한 친구 티투스와 함께 프라그를 거쳐 빈에 도착하였다. 이번에도 전처럼 환대해 줄 것이란 기대와 함께. 그러나 전과는 딴판이었다. 그 사이에 바르샤바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나 여명 정부가 세워지고 러시아가 이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정치상 우호관계에 있던 오스트리아는 자연폴란드와 폴란드인들에게 적대감정을 갖게 된 것이었다. 티투스는 쇼팽을 혼자 남겨두고 조국을 구하러 귀국했다. 쇼팽은 어쩔 수 없이 빈을 떠나기로 하고 런던행 비자를 얻어 1831년 7월 20일에 빈을 떠났다. 그는 가늠도 중인 9월 8일에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하여 바르샤바가함락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가슴을 찌르는 아픔을 느꼈다. 이 역사적인 참사는 독립하려는 폴란드의 민.. 2023. 4. 26.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생애 쇼팽의 생애 천재인 프리드릭 프란치적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은 1810년 2월 22일,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니콜라스 쇼팽은 프랑스 태생으로 바르샤바에서 28 마일 떨어진 제라소비 볼라 지방의 영주 수카르백 백작집의 프랑스어 교사였고, 어머니 유스티나 그 지자노프스카는 백작부인과 먼 친척인 귀족 출신으로 백작집의 가정부로 있었다. 따라서 쇼팽의 출생지는 엄밀히 따지면 제라소바 볼라의 스카르벡 백작집인 것이다. 쇼팽은 위로 누님 하나와 아래로 누이동생 둘을 두었는데, 아버지는 이 식구들의 부양을 위해 좀더 수입이 나은직장을 찾아 바르샤바로 곧 이주,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프랑스어 교사를 하였고, 어머니는 집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하숙을 쳤다. 이 즈음 쇼팽네.. 2023. 4. 26.
베토벤의 예술 고전주의를 완성시킨 낭만주의의 개척자 베토벤은 하이든 모차르트와 더불어 고전파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그러나 베토벤은 고전파 음악의 마지막 작곡가이고 완성자인 동시에 낭만파 음악의 길을 열어 준 선구자적인 음악가이다. 베토벤의 작품에서 중기 이후부터는 선배인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와 달리 낭만적 요소인 경험 또는 신념의 고백이라든가 주관적 감정의 강조가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토벤을 낭만파로 보는 이도 없지 않다. 사실 베토벤의 예술 생애는 18세기와 19세기를 반반씩 걸치고 있어 구 체제를 붕괴시킨 자유민권 사상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고착적인 형식주의보다 좀더 자유롭고 독창적인 낭만주의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음악사에서도 고전파에서 낭만파로 넘어가는 분수령이 명확치가 않.. 2023. 4. 25.
베토벤의 연인 베토벤의 생애 3 불멸의 연인 베토벤은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여성을 사랑한 숫자만 해도 그의 작곡 수만큼 될 것이란 설이 있을 정도로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갔다. 그의 생애에 결혼문제로 심각했던 여성만도 자그만치 열 명이 넘는다. 줄리에 귀차르디 (1801년 31세 때 교제), 요 제피네 브룬스빅(1804~6,34~36), 테레제 브룬스빅 (1804~6,3~36), 마리아 에르 되디 (1807∼17,37~47), 베티나브렌타노(1810∼12,40∼42), 테레제 말 파니 (1810) 40), 아말리 제발트(1811~12, 41~42), 도르데 아 어르만(1803~20,33∼50) 등등..……….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 14 번 op. 2.. 2023.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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