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클래식이야기134 악극의 창시자 바그너! 바그너는 1813년 5월 22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 1883년 2월 13일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70세로 객사를 한 독일의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입니다. 베를리오즈에서 시작되어 리스트에 이르리 꽃을 피웠던 후기 낭만주의 즉, 신낭만주의는 바그너에 와서 최고도에 달했고 완성의 과정에 왔습니다. 웅대하고 대규모적인 구상과 방대한 표현 양식, 대담한 화성법과 반음계적인 도입에 의한 조바꿈의 연속, 형식의 자유로운 화장, 관현악의 대규모적 편성과 웅장한 음향의 표출 등 작곡 기교의 개혁뿐 아니라, 그의 생애를 걸고 완성한 극과 음악의 유기적인 결합체인 악극을 창시함으로써 이른바, 바그너 주의로 온 구라파를 휩쓸었던 바 그녀의 역사상 업적이야말로 영원불멸의 금자탑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바그너는 경찰서.. 2023. 5. 8. 표제음악의 완성자 베를리오즈! 베를리오즈는 1803년 12월 11일, 남부 프랑스의 라 코트 샹 당들 레에서 태어나 1869년 3월 9일 역시 프랑스의 파리에서 66세로 세상을 떠난 낭만주의 작곡가입니다. 베를리오즈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인 기질이 뛰어났는데, 한 번 들은 노래는 잇지 않고 불렀습니다. 의사인 부친은 플루트 비슷한 악기인 흐라지오랫드 기타 등의 주법과 초보적인 음악 이론을 그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부친은 베를리오즈를 음악가로 교육시키기는 싫어서 의학공부를 시키겠다고 파리의 의학 전문 학교에 보내었습니다. 1821년 11월 18세인 베를리오즈는 의학 전문 학교에 들어가 기는 하였으나 첫해부터 실습 때 기겁을 하고 실신한 그는 도저히 의사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부친에게 여러 차례 음악가가 되겠다고 간청을 하였습니.. 2023. 5. 7. 이탈리아 작곡가 이며 바이올리니스트인 비발디! 비발디는 1678년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1741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의 비인에서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 시대의 바이올린 주자인 동시에 작곡가입니다 비발디는 바흐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준 위대한 음악가로 40곡이 넘는 오페라와 100곡이 넘는 이른바 '콘체르토 그릇소라고 하는 복수의 독주악기와 합주부로 구성되는 대 협주곡과 단일 독주의 협주곡, 그리고 실내악곡, 성악곡 등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들 작품들이 내용적으로 반드시 최상급은 아니라 할지라도 충실하고 형식적으로 잘 정돈되어 바로크 음악대표적인 작품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발디는 베네치아 산마르코 대성당의 주자로 있던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 작곡을 배웠고, 또한 죠반니 레그렌치에게 지도받았습니다. 1703년, 비발디는 성.. 2023. 5. 6. 베토벤의 음악의 성격과 의의 피아노 음악 베토벤 때만 해도 피아노는 현을 친 틀이 오늘날처럼 쇠가 아니라 나무로 돼 있었고, 현을 때려주는 해머도 오늘날처럼 펠트가 아니라 사슴가죽으로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음질도 약간 달랐고 음량도 오늘날처럼 크지 못했으며 음역도 현재의 88개의 키이 하고는 비교도 안 되었읍니다. 그러나 베에토벤 시절에는 피아노가 표현이 풍부한 악기로서 일반에게 인식돼 있었습니다. 표현 능력 면에서 쳄발로와 모짜르트 시대의 피아노 사이의 차이보다 모차르트 피아노와 베토벤 피아노와의 차이가 훨씬 더 컸습니다. 피아노는 이때부터는 이미 모짜르트 시대의 우아하고 품위 있는 악기가 아니라 작곡가의 정열과 힘을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독주악기로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피아노가 가진 이와 같이 풍부하고 자유로운 작곡 기.. 2023. 5. 5. 베에토벤과 종교 베토벤은 어려서 본에서 가톨릭적인 교육을 받았고 이따금 궁정 오르간 연주자로서 미사에 참석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젊어서부터 성당과의 접촉은 많았던 셈입니다. 자기 스스로 종교에 대해 말하는 일은 드물었지만 신에 대해 굳은 신앙을 가졌던 것만은 틀림 없읍니다. 어려서 충분히 교육받지 못했던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보충하고자 커서 그는 여러 가지 책들을 읽었습니다. 종교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가졌고 이집트, 인도의 종교에 관한 서적도 읽었읍니다. 그러나 '신(神)에 대해서는 굳이 토의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 그의 근본사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당시의 성당에 대해 어떤 회의 같은 것을 가졌다 해도 신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는 1815년의 수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2023. 5. 4. 베토벤의 사랑 베토벤은 어려서 더러운 옷 때문에 꾸중을 듣자 그러면 어때요. 크면 그런데 신경 안 쓸 텐데요"라고 베토벤은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예의 범절이며 옷차림새에 별로 교육받지 못한 베토벤에게 본의 귀족들은 친형제처럼 에티켓을 가르쳐 주곤 했습니다. 베토벤이 빈에 왔을 때는 상당히 멋도 부리고 있었읍니다.그러나 이것은 그가 귀족들과 어울려 생활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던 것뿐이었습니다. 춤도 배우긴 했지만 도무지 형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자들에 대한 예의범절만은 깎듯이고 합니다. 그러던 그도 30세가 지나 귀가 점점 들리지 않게되자 절망감에 사로잡히면서 옷차림에는 전혀 무관심해지고 말았습니다. 생전 빗지 않아 수세미처럼된 머리에 며칠이고 수염은 깎지 않은 채 행길을 돌아다니는가 하면.. 2023. 5. 3. 이전 1 ··· 14 15 16 17 18 19 20 ··· 2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