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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121

쇼팽 조국을 떠나다 조국을 떠나다 쇼팽은 1830년 11월 23일, 절친한 친구 티투스와 함께 프라그를 거쳐 빈에 도착하였다. 이번에도 전처럼 환대해 줄 것이란 기대와 함께. 그러나 전과는 딴판이었다. 그 사이에 바르샤바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나 여명 정부가 세워지고 러시아가 이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정치상 우호관계에 있던 오스트리아는 자연폴란드와 폴란드인들에게 적대감정을 갖게 된 것이었다. 티투스는 쇼팽을 혼자 남겨두고 조국을 구하러 귀국했다. 쇼팽은 어쩔 수 없이 빈을 떠나기로 하고 런던행 비자를 얻어 1831년 7월 20일에 빈을 떠났다. 그는 가늠도 중인 9월 8일에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하여 바르샤바가함락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가슴을 찌르는 아픔을 느꼈다. 이 역사적인 참사는 독립하려는 폴란드의 민.. 2023. 4. 26.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생애 쇼팽의 생애 천재인 프리드릭 프란치적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은 1810년 2월 22일,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니콜라스 쇼팽은 프랑스 태생으로 바르샤바에서 28 마일 떨어진 제라소비 볼라 지방의 영주 수카르백 백작집의 프랑스어 교사였고, 어머니 유스티나 그 지자노프스카는 백작부인과 먼 친척인 귀족 출신으로 백작집의 가정부로 있었다. 따라서 쇼팽의 출생지는 엄밀히 따지면 제라소바 볼라의 스카르벡 백작집인 것이다. 쇼팽은 위로 누님 하나와 아래로 누이동생 둘을 두었는데, 아버지는 이 식구들의 부양을 위해 좀더 수입이 나은직장을 찾아 바르샤바로 곧 이주,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프랑스어 교사를 하였고, 어머니는 집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하숙을 쳤다. 이 즈음 쇼팽네.. 2023. 4. 26.
베토벤의 예술 고전주의를 완성시킨 낭만주의의 개척자 베토벤은 하이든 모차르트와 더불어 고전파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그러나 베토벤은 고전파 음악의 마지막 작곡가이고 완성자인 동시에 낭만파 음악의 길을 열어 준 선구자적인 음악가이다. 베토벤의 작품에서 중기 이후부터는 선배인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와 달리 낭만적 요소인 경험 또는 신념의 고백이라든가 주관적 감정의 강조가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토벤을 낭만파로 보는 이도 없지 않다. 사실 베토벤의 예술 생애는 18세기와 19세기를 반반씩 걸치고 있어 구 체제를 붕괴시킨 자유민권 사상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고착적인 형식주의보다 좀더 자유롭고 독창적인 낭만주의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음악사에서도 고전파에서 낭만파로 넘어가는 분수령이 명확치가 않.. 2023. 4. 25.
베토벤의 연인 베토벤의 생애 3 불멸의 연인 베토벤은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여성을 사랑한 숫자만 해도 그의 작곡 수만큼 될 것이란 설이 있을 정도로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갔다. 그의 생애에 결혼문제로 심각했던 여성만도 자그만치 열 명이 넘는다. 줄리에 귀차르디 (1801년 31세 때 교제), 요 제피네 브룬스빅(1804~6,34~36), 테레제 브룬스빅 (1804~6,3~36), 마리아 에르 되디 (1807∼17,37~47), 베티나브렌타노(1810∼12,40∼42), 테레제 말 파니 (1810) 40), 아말리 제발트(1811~12, 41~42), 도르데 아 어르만(1803~20,33∼50) 등등..……….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 14 번 op. 2.. 2023. 4. 25.
의지의 생활인 베토벤 베토벤의 생애 2 모차르트는 직장에서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 주어지고 대우가 만족스럽지 못한 데서 오는 불편함을 이기지 못해 더 이상의 근무를 거부하고 프리랜스 음악가의 길을 걸은 것이 불행을 자초하였지만, 베토벤은 처음부터 누구로부터도 간섭받지 않은 자유 예술인의 길을 걸으면서도 성공한 것이다. 그것은 직업 그 자체에서 차이가 생긴 것이 아니라 일의 적성과 추진 역량, 그리고 시대 상황의 차이였을 것이다. 사교적인 것은 오히려 모차르트였다. 부드러운 인상, 상냥하고 유모스런 말씨, 화려한 옷차림, 그리고 항상 사교장에 나가기를 좋아하는 스타일이 모차르트였다. 이에 비해 베토벤은 무뚝뚝하고, 엉망인 에티켓하며,격하기 잘하는 성미에다 또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는 성격이 모차르트와 정반대였다. 그러.. 2023. 4. 25.
생활력 강한 악성 베토벤 베토벤의 생애1 생활력이 강한 악성 베토벤은 빈에서 꿈을 펼치며 일생을 마칠 때까지 경제적으로 그다지 큰 어려움을 겪지 아니하였다. 모차르트가 굶주리며 고통당하던 그 자리에서 베토벤은 굶주림은커녕 아버지를 여읜 동생 칼과 요한까지도 데려다 학업을 마치도록 하고 자립할 터전까지 마련해 주었다. 그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했을까? 거기에 그의 기질이 있고 시대 상황이 있다. 그는 우선 유력 인사들로부터 교묘하게 후원을 받아냈다. 그러면 그 후원자들부터 알아보자. ① 발트시타인 백작 -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베토벤이 본에서 유학할 수 있도록 힘써 준 사람이다. 그는 빈 사교계에서도 거물로 통해 그의 영향권에 속한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베토벤은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1805년 출판된 op.53의 피아노 소나타.. 2023.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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